밴프 여행(2) – 제스퍼까지의 로드트립

이 글은 2023-12-03에 작성되었습니다.

제스퍼 가는 길

밴프에서 재스퍼로 가는 길이 세계 10대 드라이브 코스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고 하여, 아침 일찍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챙겨 떠났다.

출발 전 기름을 가득 넣어두는 건 기본인데, 나는 주유소가 있을 줄 알았다. 또 중간중간 셀룰러 데이터가 통하지 않는 구간이 많아서 구글 맵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받아두거나 종이 지도를 준비하면 훨씬 좋다는 것도 몰랐다가 난감해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레이크 루이스에서 약 50km만 벗어나면 전화나 데이터가 잘 안 터지고, 재스퍼에서 50km 정도 떨어진 곳도 마찬가지라서 특히 노래랑 지도를 먼저 받아가는 것은 필수이다.

비수기엔 여는 상점이 많지 않으니 간식과 음료수를 미리 챙기는 게 좋다. 배고파서 한참 힘들었다.

재스퍼까지는 대략 300km 정도인데, 막상 달려보니 도착보다 가는 길이 훨씬 더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빨리 도착하고 싶어 속도를 냈지만, 이내 눈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자연 풍광에 서서히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 신호가 약하다 보니 정확한 위치 파악이 어려웠지만, 사람들이 차를 세워둔 곳이 있으면 따라 멈춰보기도 하고, 기억에 남은 블로그 이름이 보이면 바로 들어가 산책을 하며 주변을 감상했다.

Bow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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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Icefield

Sunwapta Falls

Athabasca Falls

Bow Lake, Columbia Icefield, Sunwapta Falls, Athabasca Falls 등, 저마다 다른 색감과 소리를 간직한 자연에 마음이 저절로 끌렸다.

4시간쯤 달려 재스퍼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 로드트립의 정수는 ‘재스퍼로 가는 길’이었고, 정작 재스퍼 마을 자체는 소박한 편이었다.

돌아보면, 중간중간 차를 멈춰 섰던 그 순간들이 진짜 목적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좀 더 준비했다면 더 많은 곳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럼 또 ‘퀘스트 깨듯’ 돌아다녔을 테니 지금처럼 순수하게 감동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계획 없이 여행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덜 준비한 탓에 동선도 겹치고 놓치는 곳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무작정 달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풍경들은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줬다. 수만 년의 역사를 품은 산맥과 막힘없이 이어진 도로를 보고 있으면, 빡빡한 일상과 작은 고민들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이번 여행의 테마가 ‘여유’였던 만큼,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었다.

자연의 웅장함 앞에 서면, 언제든 내 삶도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 잠시 신호가 끊기거나 길을 잃어도, 결국엔 다시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워킹홀리데이 기간 중에 이렇게 알찬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순간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결국 재스퍼 마을에 도착해서야 “아, 마을 자체보다 여정이 더 가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아쉬움도 들었지만, 동시에 중간중간 멈춰서 누렸던 풍경들이 정말 소중하게 다가왔다. 로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이 드라이브는 남은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나에게 큰 자극이 될 것 같다. 자연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고민이 참 하찮아 보일 때가 있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오늘 하루는 여유를 만끽함과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 작은 깨달음 덕분에 앞으로의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질 것 같다.

— Gra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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