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프 여행(2) – 제스퍼까지의 로드트립

이 글은 2022-10-26에 작성되었습니다.

제스퍼 가는 길

밴프에서 재스퍼(Jasper)로 이어지는 길, 일명 ‘아이스필드 파크웨이(Icefields Parkway)’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10대 드라이브 코스로 불린다. 그 명성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아침 일찍 샌드위치와 커피를 챙겨 길을 나섰다.

⚠️ 출발 전, 이건 알고 갔어야 했다 (반성문)

여행 준비를 철저히 안 한 티가 여기서 났다.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며 몇 가지 뼈저린 팁을 먼저 남긴다.

식량 확보: 비수기라 그런지 문을 연 상점이 거의 없었다. 배고파서 운전하는 내내 힘들었다. 차라리 편의점을 털어서라도 간식과 음료수를 넉넉히 쟁여두자.

데이터 끊김 주의 (오프라인 지도 필수): 레이크 루이스를 50km 정도 벗어나면 그때부터 ‘서비스 없음’의 연속이다. 재스퍼 근처 갈 때까지 전화도 데이터도 안 터진다. 구글 맵 오프라인 지도 다운로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종이 지도도 있으면 좋다.)

노래 미리 다운로드: 데이터가 안 터진다는 건 스트리밍 음악도 멈춘다는 뜻. 적막 속에서 운전하고 싶지 않다면 플레이리스트를 미리 폰에 저장해둬야 한다.

주유는 무조건 ‘Full’로: 중간에 주유소가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가 큰코다칠 뻔했다. 출발 전 밴프나 캔모어에서 기름을 꽉 채워야 한다.

특히 레이크 루이스에서 약 50km만 벗어나면 전화나 데이터가 잘 안 터지고, 재스퍼에서 50km 정도 떨어진 곳도 마찬가지라서 특히 노래랑 지도를 먼저 받아가는 것은 필수이다.

재스퍼까지는 편도 약 300km. 처음엔 빨리 도착해서 쉬고 싶은 마음에 액셀을 밟았지만, 이내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로키산맥의 웅장함이 말도 안 되게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신호도 없으니 정확히 여기가 어딘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럴 땐 나만의 룰을 정했다. “앞서가는 차들이 갓길에 세워져 있다면, 거기가 뷰 포인트다.” 남들이 멈춘 곳에 따라 멈췄다.

Bow Lake



Columbia Icefield

Sunwapta Falls

Athabasca Falls

Bow Lake, Columbia Icefield, Sunwapta Falls, Athabasca Falls 등, 저마다 다른 색감과 소리를 간직한 자연에 마음이 저절로 끌렸다.

4시간쯤 달려 재스퍼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 로드트립의 정수는 ‘재스퍼로 가는 길’이었고, 정작 재스퍼 마을 자체는 소박한 편이었다.

돌아보면, 중간중간 차를 멈춰 섰던 그 순간들이 진짜 여행이었다고 생각이든다. 사실 좀 더 준비했다면 더 많은 곳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럼 또 ‘퀘스트 깨듯’ 돌아다녔을 테니 지금처럼 순수하게 감동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계획 없이 여행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덜 준비한 탓에 동선도 겹치고 놓치는 곳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무작정 달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풍경들은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줬다. 수만 년의 역사를 품은 산맥과 막힘없이 이어진 도로를 보고 있으면, 빡빡한 일상과 작은 고민들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이번 여행의 테마가 ‘여유’였던 만큼,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니 내가 가진 고민들이 참 별거 아니구나 싶어 오히려 위로가 됐다.

결국 재스퍼 마을에 도착해서야 “아, 마을 자체보다 여정이 더 가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아쉬움도 들었지만, 동시에 중간중간 멈춰서 누렸던 풍경들이 정말 소중하게 다가왔다. 로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이 드라이브는 남은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나에게 큰 자극이 될 것 같다. 자연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고민이 참 하찮아 보일 때가 있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오늘 하루는 여유를 만끽함과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 작은 깨달음 덕분에 앞으로의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질 것 같다.

— Gra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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