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프 여행(4) – Sulphur Mountain 곤돌라

Banff Gondola와 Cosmic Ray Station

이 글은 2022-10-28에 작성되었습니다.

🌨️ 비에서 눈으로, 안개 속 곤돌라 여정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벤프의 마지막 날, Sulphur Mountain Cosmic Ray Station을 방문하기로 계획해 둔 날이었다. 비 오는 날 산행이라니 잠시 고민이 됐지만, 이미 예약도 했고 “산 위로 올라가면 비가 눈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곤돌라 탑승장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의 빗방울이 어느새 눈송이로 변해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약 8분. 다른 여행객들의 후기를 보면 로키산맥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는데, 오늘은 날씨 탓에 온통 하얀 안개뿐이었다. 시야는 제한적이었지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들은 쉽게 보지 못할, 안개에 덮인 설산 특유의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봤으니까. 좋은 뷰는 인터넷에서 보면 됨

🏔️ 산 정상에서의 특별한 경험


정상에 도착하면 곤돌라 상부 정류장 건물이 나온다. 2층은 박물관, 4층은 전망대로 되어 있다. 잠시 몸을 녹일 겸 들른 2층 박물관은 생각보다 알찼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부터 곰의 생태, 주요 출몰 지역 정보까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았다.


박물관을 나와 관측소로 향하는 산책로(보드워크)를 걷기 시작했다. ‘산책’이라는 가벼운 단어를 썼지만, 현실은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눈 섞인 칼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는데, 정말 살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눈 내리는 설산을 간다면 바라클라바나 마스크처럼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장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멋 부리다 얼어 죽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걷다가 잠시 흡연 부스에 들렀다. 국립공원 산 정상에 흡연 구역이 이렇게 잘 마련되어 있다는 게 의외였다. 하얀 설산 한가운데서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은 꽤나 색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눈과 안개로 인해 가시거리가 넓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눈 내리는 산의 고요함과 외로움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추위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져 곧 하산했다.

벤프에서의 마지막 날, 눈 내리는 산을 경험하며 자연이 주는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경험에는 득과 실이 함께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좋은 날씨였다면 멋진 전망을 볼 수 있었겠지만, 눈 내리는 산의 고요함과 신비로움은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이었다.

🔑 열리지 않는 숙소 문과 5시간의 기다림


여행의 마무리가 훈훈하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시트콤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카드키를 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경비원에게 도움을 청하고, 마스터키를 가진 직원이 왔지만 그들의 키로도 문은 꼼짝하지 않았다.

카드키 인식기 점검, 문짝 분해 시도… 별의별 쇼를 다 했지만 결국 원인은 도어락 배터리 방전이었다. 문제는 이걸 고칠 기술자가 오기까지 무려 5시간을 로비에서 떨어야 했다는 것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문을 거의 부수다시피 해서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속도. “아, 여기가 캐나다지.” 일처리가 생각보다 훨씬 느리다는 걸 뼈저리게(그리고 춥게) 체감한 밤이었다.

, 쉼표

잠시 들른 캘거리(Calgary)는 왠지 모르게 한국의 청주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여유롭고 차분한 느낌이랄까. 이번 밴프 여행은 내 인생의 ‘쉼표’였다. 설산 위에서 미래를 고민하고, 대자연 속에서 나를 돌아본 이 시간들이 앞으로 남은 워킹홀리데이 생활,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지탱해 줄 든든한 원동력이 될 것 같다.

— Gra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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