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10-28에 작성되었습니다.
옛 은행의 흔적과 미술관, 그리고 퀘벡으로 향하는 길
어제 못 잔 잠을 푹 자고 일어나, 몬트리올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브런치로 시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크루 컬렉티브 앤 카페(Crew Collective & Cafe)’. 몬트리올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라 들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 은행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카페다. 흥미로운 점은 옛 은행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살려두었다는 것이다. 높은 천장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창구로 쓰였던 공간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1900년대의 은행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반 카페 공간 외에 오피스 공간은 예약을 해야 사용할 수 있고, 은행의 대기 공간이었던 앞쪽 구역에서 손님들이 자유롭게 커피와 브런치를 즐기는 구조다. 운이 좋게도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다음 여행지인 퀘벡 시티의 정보를 탐색했다. 한참을 여유 부리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내 뒤로 엄청난 인파가 줄을 서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카페를 나와 몬트리올 미술관(Montreal Museum of Fine Arts)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즐겨 찾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인’이 되어보겠다는 일념, 그리고 딱히 할 것도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겹쳐 발걸음을 옮겼다.


입장료는 16불 정도. 다른 전시회도 함께 열리고 있어 추가 요금 없이 볼 수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기본 전시만 관람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박물관에 가면 쓱 훑어보고 나오기 바빴는데, 확실히 타지라 그런지 태도가 달랐다. 설명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고,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무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색의 조합, 음악의 발전사, 역사적 배경이 예술에 미친 영향 같은 것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니 평소에 하지 않던 창의적인 생각들이 떠올랐다. 왜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생각보다 나는 이런 정적인 공간에서 무언가를 얻어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관람을 마치고 카풀을 이용해 퀘벡 시티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몬트리올이라는 도시에 대해 곱씹어봤다. 몬트리올은 내가 겪은 다른 캐나다 지역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영국 문화가 짙은 다른 주와 달리, 프랑스의 문화가 있는 퀘벡 주는 독립적인 성향이 강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했다. 배낭여행은 결국 궁상의 연속이다. 오늘도 역시 걷고, 구경하고, 때로는 힘들게 이동하며 이 나라를 온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특별한 장소에서 얻은 경험 하나가 인생의 좋은 점 하나를 찍어준 것 같아 충만한 시간이었다.
마무리하며

사실 몬트리올의 도미토리 생활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동양인으로서 묘한 소외감과 두려움을 느꼈고,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 채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또한 경험이고 낭만이다. 오늘의 기억을 자양분 삼아, 다음 숙소에서는 더 당당하게 요구하고 섞여들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부족해서 그런거 일 수 있다. 나쁜 기억조차 성장의 밑거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좋은 하루였다.
— Gray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