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 11-25 | 토론토 | 워홀 첫 풀타임 잡, 그리고 사흘 연속 출근 실패의 기록
이 글은 2022-11-17부터 11-25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토론토 워킹홀리데이 두 달 차에 첫 풀타임 직장을 구했다. 직원 12명 정도의 작은 홀세일 회사다. 면접부터 첫 주 출근까지 일주일 동안 지각을 세 번 했고, 그 사이 집 계약을 했고, 생각지도 못한 사무직 배정까지 받았다. 토론토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워홀러라면 한 번쯤 겪을 법한 일주일의 기록이다.
두 시간 걸려 도착한 면접
목요일, 면접을 보러 갔다. 도착 두 시간 전부터 준비하고 한 시간 사십 분 전에 출발했는데 겨우 시간에 맞췄다. 집에서 이 정도로 멀 줄은 몰랐다.
면접 분위기는 좋았다. 다들 나를 반겼고, 비자 이야기까지 먼저 꺼내며 오래 일할 사람으로 봐주는 눈치였다. 특히 두 가지를 마음에 들어 했다. 풀 라이센스인 G 면허가 있다는 것, 그리고 소프트웨어 학과라는 것. 그래서 홈페이지 관리나 데이터 관리 쪽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물론 배달 업무도 같이 하는 조건이었다. 이것저것 다 시키는, 어디에나 있는 작은 회사다.
조건은 온타리오 최저시급에 풀타임. 포지션은 차차 정해보자고 했다. 오래 일해달라며 영주권 심사를 도와주겠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나는 한국에 돌아가 학사를 마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던 터라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어쨌든 일 자체는 한국에서 하던 일보다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었다.
사실 돌아오는 길에는 생각이 많았다. 처음 캐나다에 올 때는 영어를 쓰는 서버나 캐셔, 아니면 개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왔는데, 결국 한국어를 쓰는 회사라니. 내가 그렸던 워홀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근 한두 달을 놀다 보니 일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 찬 것도 사실이고, 외국에서 처음 일하는 거라 월급은 어떻게 받는지, 못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서류 문제까지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래도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사무 쪽 일을 준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물론 주된 일은 몸 쓰는 일이겠지만, 사무일 기회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풀타임 잡 구하기 어렵다는 토론토에서 이만한 기회도 없었다.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면 뭘 하겠는가. 일단 해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최소 한 달은 다니면서 창고의 외국인 직원들과 영어로 부딪혀보고, 원래 목표했던 일도 계속 찾아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캐나다 물가에 눈물이 나서라도 일은 해야 했다.
첫 출근부터 8분 지각
월요일 첫 출근. 이제부터 못 쉴 거라는 생각에 주말 내내 게임을 하며 놀았더니 바이오리듬이 무너졌고, 긴장까지 겹쳐 3시간밖에 못 잤다. 몽롱한 정신으로 집을 나섰다.
당시 다운타운 유니온역 근처에 살았는데,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환승 시간까지 생각하면 2시간도 간당간당하다. 핀치역에서 42A 버스를 타면 사무실 앞까지 간다. 7시에 일어나 7시 22분에 나섰는데도 8분을 늦었다. 첫 출근인데 말이다. 우버를 불러보려 했는데 인증도 안 되고 요금이 30불을 넘어가서, 양해를 구하고 조금 늦게 도착했다.


도착해서는 사장님과 함께 내가 맡을 배송 구역을 도는 드라이브를 했다. 그 차 안에서 급여가 2주급으로 바뀌고 시급도 16불로 올랐다. 그당시 최저시급이 15.5불이었으니,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였던 모양이다. 첫날부터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돌아오니 점심시간이었고, 점심이 끝나자 사장님과 미팅이 잡혔다. 회사 도시락 브랜드의 매출전표 양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창고 정리를 각오하고 왔는데 갑자기 사무일을 주신 것이다. 혼을 불어넣어 엑셀 수식과 형식을 만들어 제출했고, 형식을 잡는 데 오후가 통째로 지나갔다.

퇴근길에는 실장님이 핀치역까지 카풀을 해주셨다. 가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대화 도중 실장님이 사장님의 아내, 그러니까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실수는 없었는지 식은땀이 났다. 다행히 사모님은 쿨한 분이었다. 오래 일하길 바라는 사장님과 달리, 어머니의 마음으로 졸업하고 다시 오는 게 좋다고 조언해주셨고, 실제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다고 하셨다.
전날까지만 해도 집 계약이며 디파짓이며 돈 걱정에 잠을 설쳤는데, 막상 와보니 일은 어렵지 않았고 사람들이 나를 일원으로 받아주는 게 느껴졌다. 같은 문화권이라 말이 통하는 것도 생각보다 좋았다. 그렇게 피하고 싶던 한국계 회사인데 말이다.
우버에 26불을 태운 둘째 날
늦지 않으려고 전날보다 3분 이른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이번에는 버스를 10초 차이로 놓쳤다. 출발 예정 시각이 8분인데 7분에 정류장에 도착하니 이미 떠난 뒤였다. 종점인데 왜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토론토 TTC를 믿은 내 잘못이다.
정류장에서 부장님을 본 것 같았는데 인사가 없길래 아닌가 싶어 혼자 우버를 탔다. 이틀 연속 지각은 안 된다는 생각에 생돈 26불을 태운 것이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9시가 넘었는데도 출근 전인 사람이 많았고, 부장님은 그다음 버스로 오신 게 맞았다. 다들 내가 멀리서 오는 걸 알고 있어서, 몇 분 늦는 건 괜찮으니 우버는 타지 말라고 하셨다. 분위기 하나는 정말 좋은 회사다.

배송 업무가 끝나고 사장님 미팅이 급하게 잡혔다. 열심히 하고, 자기 업무를 파악하고, 문자 답장은 빨리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웹사이트 업무와 매출전표를 맡기면서, 창고 업무까지 병행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하셨다. 사실상 사무직 배정이었다. 면접 때 소프트웨어 학과라고 말한 게 이렇게 돌아온 것이다. 한국에서도 무서워서 지원 못 해본 사무 업무를 토론토에 와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부장님이 나눠준 사무용품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내 물건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복장은 일주일쯤 더 지켜보고 편하게 입고 오기로 했다.
퇴근 후에는 핀치 쪽 반지하 방을 보러 갔다. 방을 보는 순간 한국의 외노자 기숙사가 떠올랐다. 반지하는 답이 없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애글린턴 쪽 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이전보다 100불 할인된 가격에 계약까지 마쳤다. 이틀 연속 잠을 못 자 정신이 몽롱해서, 밥만 먹고 곧장 잠들었다. 긴 하루였다.
창고 정리를 각오하고 들어온 회사에서 이틀 만에 사무직이라니.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출근 3일 차, TTC가 멈췄다
3일째가 되니 생각 없이도 몸이 움직여서 준비 시간이 줄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역으로 갔는데, 플랫폼에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서 있었다. 어제만 해도 자리가 넉넉했는데 오늘은 서서 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5분을 기다려도 지하철이 오지 않았다.
전광판에는 “No service at this station”이 떠 있었고, 주변에는 총을 든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출근 3일 동안 제대로 출근해본 적이 없다.

사장님께 사진과 함께 상황을 설명하고 기차로 우회하기로 했다. 토론토 광역 기차는 10불 정도. 8시 5분 기차까지 시간이 남아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맥모닝과 커피를 시켜 아침을 먹으며 출근길의 여유를 즐겼다. 일부러 잠까지 줄여가며 일찍 나온 날 가장 크게 늦다니, 가는 날이 장날이다. 결국 30분 늦게 도착해 정신없이 일했다.
이날 사장님이 갑자기 운전면허가 있다며 세 번이나 칭찬을 하셨다. 은행 갈 일이 많다는 이유였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게 내심 뿌듯하면서도, 은행을 얼마나 다니길래 저렇게 좋아하실까 싶었다. 동료들도 사장님이 좋아할 스펙이라며 영어만 더 잘하면 비서를 해도 되겠다고 거들었다.
처음으로 은행 디파짓 업무도 맡았다. 캐나다에 온 지 한 달 된 사람에게 돈이 오가는 일을 맡긴다는 게 의아하면서도, 그만큼 믿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은행에 가니 직원이 알아서 다 해줬다. 체크(수표)는 본인 외에는 사용할 수 없어서 겁낼 게 없다는 것도 이날 배웠다. 30분이나 늦었는데 다들 반겨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늘도 실장님 차를 타고 핀치역으로 나와 집에 도착했다. 저녁은 김치찜. 3일 연속 라면으로 버티다 제대로 된 밥을 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잠은 중요하다. 며칠 못 잤더니 몸도 마음도 예민해져 있었다.
나흘 만의 정상 출근
10분 일찍 출발했고, TTC도 정상 운행했다. 중간에 멈추는 일 없이 곧장 핀치역에 도착하니 버스까지 15분이 남았다. 팀홀튼에서 아침 커피를 사 들고 여유롭게 버스에 올랐다. 9시 정각 도착. 나흘 만의 정상 출근이었다. 버스 시간이 매번 다르니 차라리 이렇게 여유 있는 쪽이 마음 편하다.
사장님 내외가 아직 출근 전이라 동료들과 40분 정도 수다를 떨었다. 주제는 내 집 계약이었다. 계약서는 신중하게 쓰라는 이야기부터 사기 유형까지, 토론토 물정을 제대로 배웠다. 핵심은 이렇다. 콘도는 개인 소유지만 아파트는 오피스에서 계약하는 집이라, 계약 전에 반드시 오피스와 계약된 집인지 확인해야 문제가 생겼을 때 보호받을 수 있다.

밀린 일을 처리하고 6시가 넘어 퇴근했다. 일주일이 이렇게 길었나 싶었다. 내일이 아직 금요일이라니.
금요일, 대학교 납품 인수인계
일주일의 마지막 날은 인수인계를 받는 날이었다. 회사가 납품하는 대학교 캠퍼스들을 도는 일인데, 하던 배송과 크게 다르지 않고 구역이 조금 늘어나는 정도였다. Justin님과 함께 이동하며 회사 이야기, 영어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전이 금방 갔다. 회사에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역시 좋다. 이분이 다른 곳으로 옮기기라도 하면 꽤 아쉬울 것 같다.

대학교 안을 도는 기분은 오묘했다. 나도 대학생인데 지금은 대학교에 납품을 하고 있으니 문득 초라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잘 이겨내면 한국에서 좋은 대학 생활과 조금 더 파란만장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다짐하며 계속 움직였다.
나도 Justin님처럼 회사의 체계를 잡는 일을 도울 수 있다면 지금보다 뿌듯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디어를 내도 돈이 들지 않는 것만 받아들여지니 제약이 많다. 작은 회사의 현실이다.
오후에는 사장님과 배송을 돌며 운전 교습을 받았다. 좌회전 전용 신호 표지판이 없으면 직진 신호에 비보호 좌회전이 가능하다는 것, 중앙선을 넘는 좌회전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 한국과 달라서 알아두면 유용하다. 앞으로는 웹사이트 같은 사무 업무도 하나씩 맡아 진행하기로 이야기가 됐다. 나를 높게 평가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가끔 내 계획보다 몇 걸음 앞서 나가셔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러다 여기에 오래 묶이는 건 아닌가 싶어 살짝 겁나기도 하고.
배송이 끝난 5시 반에 퇴근해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마침 블랙프라이데이라 아버지 선물과 나에게 줄 조그마한 선물을 사기로 했다. 일주일 일하느라 고생했으니까.
첫 주를 보내고
걱정으로 시작해 걱정이 무색해진 일주일이었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사람들은 나를 일원으로 받아줬고, 창고 정리를 각오하고 들어간 회사에서 전공을 살릴 기회까지 얻었다. 영어만 더 늘리면 여기서도 좋은 사무직을 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물론 운이 좋았다. 다만 준비가 없었으면 잡지 못했을 운이다. 걱정은 사서 하는 게 아니고, 시간이 해결해줄 불안이라면 나를 믿고 기다리면 된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내일도 오늘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조금 더 움직인다면,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리라 믿는다.
— Gray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