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크리스마스 | 영어 자막으로 본 아바타 2와 홈파티

2022-12-24 ~ 12-25 | 토론토 | 캐나다에서 보낸 첫 크리스마스

이 글은 2022-12-24부터 12-25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특별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집에서 쉬다가 이대로 하루를 보내기는 아쉬워 애글린턴 집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다음 날에는 핼러윈 때 만난 친구에게 홈파티 초대를 받았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크리스마스를 이틀에 걸쳐 보냈다.

영어 듣기평가

마침 아바타 2가 개봉한 때였다. 3D 영상미가 좋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이런 영화라면 영화관에서 봐야 할 것 같았다. Cineplex VIP에서 산 3D 표는 인당 2만 원 정도였다.

표를 끊으면서 자막을 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연히 언어를 고를 수 있는 줄 알고 한국어 자막을 기대했는데, 받아든 기계에는 영문만 떴다. 이름은 CaptiView였다. 긴 지지대를 컵홀더에 끼우고 작은 화면을 보기 편한 위치로 구부려 쓰는 장치였다.

푸틴과 3D 안경, 자막 기계까지 챙겨 상영관에 들어갔다. 영화 시작 시간보다 늦었지만 화면에는 아직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캐나다 영화관은 본편 전 광고가 20분쯤 이어진다. 이날만큼은 긴 광고가 반가웠다.

본편이 시작되자 영화관이 아니라 세 시간짜리 영어 듣기평가장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2만 원이 넘는 표를 사놓고 내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다. 초반에는 실제로 대사의 절반 정도를 놓쳤다. 자막 장치에 뜨는 단어를 따라가며 인물 관계부터 붙잡아야 했다.

인물 소개가 끝나고 이야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금씩 따라갈 수 있었다. 모든 대사를 알아들은 건 아니지만 장면과 소리를 같이 보니 큰 흐름은 놓치지 않았다. 영문 자막에서 아는 단어 하나를 발견할 때마다 앞뒤 장면도 같이 이어졌다.

CaptiView 영문 자막과 함께 관람한 아바타 2

걱정했던 세 시간은 한 시간처럼 지나갔다. 3D인데도 화면과 색이 선명했고, 이야기보다 장면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1편을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영문 자막조차 없다면 아직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키워드가 보이면 영화 한 편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는 건 알았다. 좋은 영화를 본 데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까지 조금 얻었으니, 첫 캐나다 영화관 나들이는 성공이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다음 날에는 핼러윈 때 만난 친구들의 홈파티에 갔다. 그때 만난 사람들의 지인까지 초대해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모이는 자리였다. 외국인 친구들도 온다는 말을 듣고 약간 긴장한 채 친구 집으로 향했다.

먼저 와 있던 호스트와 친구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맥주부터 마셨다. 어색함을 없애려고 시작한 술은 바닥에 둘러앉아 하는 술게임으로 이어졌다. 외국인 친구들이 도착하면 게임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아 그전까지 쉴 새 없이 판을 돌렸다.

크리스마스 홈파티에 준비된 음식과 술

잠시 뒤 외국인 친구 네 명이 들어왔다. 대부분 한국인이던 자리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섞이자 분위기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다들 한마디씩 건네며 영어를 썼지만 대화는 어색하게 끊겼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외국인 친구들도 바닥에 둘러앉으며 한국에서는 원래 이렇게 노느냐고 물었다. 한국 술게임을 몇 번 한 뒤에는 외국인 친구들이 알려준 파티 게임도 해봤다. 서로 규칙을 설명해 가며 한참 게임을 이어갔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풍선으로 꾸민 홈파티 포토존

게임이 끝난 뒤 집 안은 금세 노래방처럼 변했다.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더는 움직일 힘이 없어지자 모두 바닥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지하철 첫차가 다니기 시작한 아침 6시에야 집에서 나왔다.

크리스마스 홈파티를 마치고 돌아가던 눈 내리는 새벽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처음 가본 홈파티는 오랜만에 MT에 온 것처럼 재미있었다. 영어 자막으로 영화 한 편을 보고, 여러 사람이 모인 집에서 밤을 새우고, 눈 쌓인 길로 나와 첫차를 탔다. 캐나다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끝났다.

— Gra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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