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5 | 토론토 | 아침엔 비, 저녁엔 눈보라
이 글은 2022-12-15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토론토에 와서 처음 맞는 폭설이었다. 아침에는 비가 조금 내리더니 저녁에는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출근길, 비에서 눈으로
이날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회사에서 차를 출퇴근용으로 빌려주고 있어서 그 차를 몰고 출근했는데, 아침에는 비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금방 우박에 가까운 비눈으로 바뀌었고, 점심때가 다 되어가니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워홀러들 사이에서는 캐나다 눈은 한번 쌓이면 봄까지 녹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때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쌓여가는 눈
오후가 되니 바람이 세졌다. 눈은 바람에 실려 몰아치기 시작했고, 오후 3시쯤에는 신발 밑창을 충분히 덮을 만큼 쌓였다. 이 정도는 아직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다.

눈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 얼굴이 아팠다. 눈송이라기보다 얼음 알갱이가 뺨을 치는 느낌이었다. 맞을 때마다 따갑고 아팠다.
퇴근길, 폭설
저녁이 되자 눈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차들은 시속 40km를 넘기지 못했고 버스는 연쇄 연착됐다. 눈이 쌓이면 버스가 아예 안 다니는 날이 부지기수라고 하는데, 그 말이 실감 났다. 퇴근하는 사람들도 다들 내일 출근을 걱정하고 있었다.

차들이 지나간 자리의 녹은 눈은 살얼음 웅덩이가 되어서 지나가는 발을 다 적셨다. 신발은 이미 다 젖어서 얼어 있었고, 옷에 붙은 눈들은 얼어서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눈이 쏟아지는 길을 한 발짝 걷기도 어려웠다. 이날 신은 건 평소 신던 운동화였다. 퇴근 무렵부터 집까지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려서,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비보다는 눈이지만, 이제는 둘 다 싫어지는 날이었다.

패딩이 사치가 아닌 나라
옷이 젖으니 답이 없었다. 한국에서 패딩은 필수가 아니다. 사치품에 더 가깝다. 캐나다는 생존을 위한 필수 템이다. 캐나다구스가 왜 필수 템 소리를 듣는지 이날 알았다. 후리스로는 절대 버틸 수 없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사실 스노우 부츠는 중고로 사둔 게 있었는데, 이 정도로 눈이 올 줄 몰라서 그날은 안 챙겼다. 운동화는 하루 만에 얼어붙었고, 다음 날부터는 부츠를 신고 나갔다. 스노우 부츠는 필수다.
다음 날 아침
며칠 전 링크장에서 스케이트를 탈 때는 겨울이 꽤 좋아 보이기도 했다. 다들 이날 눈이 유독 많이 온 날이라고 했는데, 처음 맞아본 캐나다 눈이라 더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은 그쳐 있었다. 대신 길에는 발이 푹 묻힐 만큼 쌓여 있었다.
— Gray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