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워홀 이사 | 유니온역 집을 떠나며

2022-11-30 ~ 12-01 | 토론토 | 다운타운에서 애글린턴으로

이 글은 2022-11-30부터 12-01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유니온역 집에서 한 달 반을 살고 애글린턴으로 이사했다. 집주인이 급하게 한국에 다녀올 일이 생겨 그동안만 내놓은 집이었는데, 다운타운 한복판을 월 1,980불(약 198만 원)에 살았으니 토론토에 오자마자 운이 좋았다.

이사 전날, 구세주가 나타났다

11월 30일, 다음 날이면 집을 비워줘야 했다. 지난 주말에 미리 옮긴 건 당장 쓰지 않을 큰 짐뿐이었다. 그때까지도 여기서 먹고 자야 했으니, 생활에 쓰던 짐은 오늘 한꺼번에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짐을 싸고 청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퇴근 무렵 구세주가 나타났다. 사정을 들은 회사 배송기사님이 차로 도와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짐만 싸두면 저녁에 들르겠다고 하셔서, 집으로 돌아가 부지런히 짐을 쌌다. 청소까지 마칠 즈음 기사님이 차를 몰고 오셨고, 남은 짐을 전부 싣고 한 번에 새집까지 옮겼다.

이사하던 날 눈이 내리던 다운타운

하필 이날 눈이 내렸다. 혼자 지하철로 날랐다면 춥고 무거워서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짐을 내려놓고 돌아오니 저녁 먹을 여유까지 남았다.

이사를 끝내고 여유 있게 먹은 저녁

떠나기 아까웠던 집

짐을 싸다 말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한 달 반을 지낸 집인데 사진 한 장 없이 떠나기는 아쉬웠다. 어수선한 김에 찍어서 살림이 널브러져 있다.

짐을 싸던 날의 유니온 집 거실

위치가 좋은 집이었다. 유니온역이 바로 옆이라 지하철도 기차도 걸어서 탔고, 마트는 옆 건물이었다. 로비에는 경비원이 상주했고 수영장과 헬스장도 있었다. 책상만 놓인 방을 빌려 독서실처럼 쓰는 공유 오피스까지 있었다.

방 두 개에 거실이 따로 있고, 세탁기는 집 안에 있었다. 토론토에서 집 안에 세탁기가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살아보면 안다.

무엇보다 창밖이었다. 빌딩 숲 너머로 온타리오 호수가 보였다. 불 꺼진 거실에 서서 야경을 보는 게 한 달 반 동안의 사치였다.

유니온 집 창밖으로 보이던 다운타운 야경

다음 날 출근할 옷만 남겨두고, 그 창밖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봤다.

애글린턴에서의 첫날

다음 날 아침, 유니온 집에서 마지막으로 출근했다. 퇴근길에는 새집으로 향했다. 짐은 이미 들여놨지만 정식 입주는 오늘이라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도착하니 집주인이 아직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키를 받고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나니 8시가 넘어 있었다.

애글린턴 새집 주방

새집은 방 하나에 거실과 주방이 딸린 아파트다. 세탁기는 집 안에 없어서 건물 공용 세탁실을 쓴다. 월세는 2,200불(약 220만 원). 방이 두 개였던 유니온 집보다 오히려 비싸다. 그 집이 얼마나 싸게 나온 거였는지 이제야 알겠다.

동네는 마음에 들었다. 다운타운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사람 사는 동네 같다. 아파트 앞에 스타벅스가 있고 주변에 마트가 세 곳, 영화관과 은행도 걸어서 간다. 여기도 역 근처라 교통이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회사가 가까워졌다.

첫날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당장 필요한 물건을 사러 Metro에 갔는데, 물건을 다 골라놓고 계산하려니 카드기가 고장이라 결제가 안 된단다. 결국 Shoppers로 옮겨 장을 봤다.

진짜는 자기 전이었다. 칫솔을 찾으려고 캐리어를 열었더니 안이 난장판이었다. 트리트먼트가 터진 것이다. 다른 짐을 정리하는 동안 캐리어 속은 저 혼자 사고를 치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닦아내고 나니 잘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새집에서 내다본 밤 풍경

수습을 마치고 밖을 봤다. 그래도 새집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했다. 내 통장 잔고도 동의하는지, 설레서 집을 나가버렸지만.

이사를 마치고

이사는 힘들다. 집을 구하고, 짐을 옮기고, 정리하고, 생활 패턴에 맞춰 다시 배치하고. 할 때마다 사야 할 것들이 새로 생긴다. 돈도 돈이지만 정신이 없다는 게 더 문제다. 당분간 주말은 짐 정리에 바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타지에서 집을 구하고 이사까지 해내고 나니 뿌듯하다.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해보면 어렵지 않다. 새집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있을지 조금은 설렌다.

— Gra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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