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8 ~ 11-29 | 토론토 | 바뀐 납품 구역, 그리고 얼떨결에 나간 배송
이 글은 2022-11-28부터 11-29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아침마다 회사가 함께 운영하는 스시집의 도시락을 실어 토론토의 대학 카페테리아에 가져다 놓는다. 지난주 인수인계받은 이 납품을 이번 주부터 혼자 돌기 시작했다.
모든 게 도와주지 않던 날
월요일은 월드컵 가나전으로 시작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 경기가 아침 8시나 10시에 열려서, 아까운 데이터를 써가며 출근 버스에서 중계를 봤다. 전반에만 두 골을 내주는 걸 보고 이건 글렀다 싶어 중계를 끄고, 단톡방에 분노를 쏟아낸 뒤 출근했다.
하필 이날은 납품 구역이 바뀌고 처음 나가는 날이었는데, 아침부터 모든 게 도와주지 않았다. 조금 늦어서 서둘러야 하는데 픽업지 앞은 거위 떼가 점령하고 있었다. 토론토에서 거위야 흔하지만, 마음 급한 날엔 하나도 반갑지 않다. 구스구스 🪿

차에 실을 스시 도시락도 순서대로 놓여 있지 않았다. 어느 카페테리아 것부터 실을지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니 평소보다 20분 늦게 출발했다. 마음이 급하면 꼭 실수가 나온다. 첫 납품지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데, 지도 핀을 엉뚱한 데 찍어둔 탓이었다. 여기서 15분을 또 까먹고, 세 번째 납품지에서는 배송이 느리다는 문자까지 받았다.
평소 11시 50분이면 끝나던 납품이 이날은 12시 20분을 넘겨서야 끝났다. 그래도 도는 길에 핼러윈 때 만났던 일행 중 한 명을 납품지에서 우연히 마주쳐 잠깐 인사를 나눴다. 낯선 도시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면 반갑다.
사무실로 돌아와 먹은 점심은 고기반찬이었다. 매일 스시를 실어 나르는 입장이라, 보통 스시를 먹는데 오늘은 점심을 가져왔다. 스시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점심을 먹고는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오느라 사무실에 앉으니 2시 반이 넘어 있었다. 밀린 사무 일을 했다. 카페테리아별로 판매량과 유통기한이 지나 돌아온 수량을 정리해서 다음 납품 물량을 잡았다. 익숙하지 않은 동선 탓에 종일 정신없던 하루였지만, 핀도 다 고쳐놨고 운전도 한결 편해졌으니 내일은 오늘보다 낫겠지.
200kg 대타 배송
화요일 오전 납품은 무사히 끝났다. 문제는 오후였다. 도매 배송을 도는 기사님이 자리를 비워 당장 대신 나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렇게 내가 나가게 됐다. 원래 우리 회사의 본업은 스시가 아니라 도매다. 이날 실은 물건은 총 200kg쯤 되는 물건이었다.
운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쌀 포대를 직접 옮기고, 물건을 매장 안쪽까지 들여놓는 것까지 내 몫이었다. 차를 세우고, 내리고, 옮기고, 들여놓고. 스시집을 비롯한 거래처 네 곳을 그렇게 돌았다. 오랜만에 몸 쓰는 일을 하니 땀이 나고 팔이 떨렸다. 운동을 습관에 넣어야겠다.


이날 들른 거래처는 한인 가게가 많아서 대화도 한국어로 오갔다. 낯선 얼굴이 물건을 들고 들어오니 사장님들은 새로 온 기사인 줄 아시고, 고생한다며 안쓰러워해 주셨다. 무거운 짐을 들고 들어간 참이라 그 말 한마디가 꽤 힘이 됐다.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식 정이다.
남은 거래처를 돌며 스몰토크로 영어도 붙여봤고, 6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나르고, 여러 사람을 만난 날이었다.
이틀을 보내고
요즘 출퇴근 버스에서는 지난 주말 도서관에서 빌린 동화책을 읽는다. 동화책을 읽으며 출근하는 사람은 이 버스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겠나, 방법이 없는데. 빨리 공부해서 책 레벨을 올리는 수밖에.
모든 게 안 도와주는 날도, 온몸이 뻐근한 날도 있었지만 이틀 내내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영어로 스몰토크를 했다. 지금은 이렇게 경험을 쌓는 시기다.
— Gray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