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2 ~ 12-06 | 토론토 | 애글린턴 새집에서 맞은 첫 주
이 글은 2022-12-02부터 12-06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애글린턴 새집에서 맞는 첫 주였다. 이사 직후라 집도 어수선한데, 하필 은행에서 문자가 왔다.
배송 중에 온 은행 문자
금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스시를 싣고 대학 카페테리아를 돌고 있는데 CIBC에서 문자가 왔다. 계좌 잔액이 부족하니 정오까지 돈을 넣으라는 내용이었다.


급여로 받은 체크가 아직 홀딩 상태였는데, 그 사이 내가 다른 은행으로 돈을 보낸 게 문제가 됐나 싶었다. 바로 CIBC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여기 전화는 원래 잘 안 받는다.
일단 배송을 돌면서, 첫 납품지 매니저에게 문자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제법 친해진 사이다. 은행에 직접 가보는 게 낫겠다고 하길래 배송을 서둘러 끝내고 핀치역 CIBC로 향했다. 한국인 직원이 있는 지점이다.
은행에서 들은 16강 소식
창구에 앉아 문자를 보여주려는데, 직원분이 먼저 한국이 16강에 올랐다고 알려줬다.
가나전에서 두 골을 내주는 걸 보고 이건 글렀다며 중계를 껐던 게 나흘 전이다. 가능성이 9%라기에 포르투갈전은 아예 보지도 않았는데, 그 확률을 뚫고 올라간 것이다. 캐나다 은행 창구에서 처음 본 한국인과 16강 진출을 축하하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없던 애국심이 다 생겼다.
문자는 별일이 아니었다. 급여 체크가 아직 홀딩이라 쓸 수 있는 돈이 0으로 잡혀서 온 문자였고, 첫 eDeposit은 원래 홀딩이 더 오래 걸린다고 했다. 급하면 은행에 직접 가서 입금하면 홀딩을 바로 풀어준다.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을 듣고 사무실로 돌아와 점심을 먹으며 포르투갈전 하이라이트를 봤다. 방방 뛰면서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다. 손흥민 인터뷰는 마음고생한 티가 나서 보는 내가 다 아팠다.
첫 주말, 밀린 집안일
토요일은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집안일이 잔뜩 밀려 있었지만, 체력부터 채우자 싶어 일부러 늦게 일어났다.

새집은 세탁기가 집 안에 없어서 건물 공용 세탁실을 쓴다. 아침에 빨래를 돌려놓고 한 시간 뒤에 가봤더니, 세탁기가 아니라 건조기에 넣고 돌려놨더라. 세제까지 넣고서. 다시 세탁기를 돌려놓고 밥을 먹었다.
나가기 전에 건조기를 걸어두고 도서관으로 갔다. 5시면 닫으니 서둘러야 했다.

지난주에 빌린 책이 유치원 2단계였는데 그것도 나에게는 어려웠다. 반납하고 사서에게 1단계 책이 어디 있는지 당당하게 물어봤다. 그렇게 그림책 세 권을 빌려 나왔다.
오는 길에 밥솥과 식용유, 식재료를 샀다. 새집에는 밥솥이 없었다. 돌아와 빨래를 개고 청소를 조금 한 뒤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고 그림책을 폈다. 한 장에 한두 문장뿐인데도 모르는 표현이 나온다. 그래도 막히지 않고 넘어가니 읽는 맛은 있었다.
한국 그림책과 다른 점도 보였다. 개미를 먹는다거나 유충을 먹었다거나, 표현이 훨씬 직설적이다. 트림(burp) 같은 효과음이나 북미에서만 쓰는 단어도 이때 처음 봤다.
이날 주말 주방 아르바이트 제안도 받았다. 쉽게 답하지 못한 건 한번 시작하면 어지간해선 그만두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나가기로 하면 오래 나가야 하고, 주말에 체력을 다 쓰면 평일 회사 일에도 지장이 갈 수 있다.
돈이야 부족하니 하면 좋겠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면 일만 하다 가는 셈이다. 일하러만 온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안 하자니 젊은 외국인들이 많은 곳이라 영어로 말할 기회를 놓치는 게 걸린다. 다음 주까지 답을 주기로 했다.
화요일, 감기
화요일은 아침 배송부터 정신이 없었다. 카페테리아마다 요청사항이 있다. 어떤 메뉴를 늘려달라, 몇 개는 줄여달라, 시간을 조금 당겨줄 수 없냐 같은 것들이다. 그걸 하나씩 받아 적으며 돌았다. 한 매장에서는 도착 시간이 늦다는 컴플레인도 들어왔다. 잘 이야기하고 나오면서 오늘 아침 듣기평가도 무사히 끝났구나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오후 배송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밥을 먹고 정산부터 했다. 그날 넣은 수량과 유통기한이 지나 회수한 수량을 맞추는 일인데, 한번 밀리면 숫자가 꼬여서 미룰 수가 없다.

오후 배송은 정체가 심했다. 물건 나르는 시간보다 도로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서, 세 시간을 꼬박 운전만 했다. 신경을 온통 앞차에 쓰고 6시가 넘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감기에 걸려 있었다.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가 싶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더니, 하나가 힘들어지니 둘 다 아팠다.
첫 주를 보내고
나는 노션에 주간 루틴을 만들어두고 하루마다 체크한다. 영어를 늘리고 싶으면 “영어 공부”라고 적는 대신 영어 강의 20분 매일, 영어 책 읽기 10분, 회화 20분처럼 잘게 쪼갠다. 운동 10분, 다이어리 주 5회, 독서 30분 주 2회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로 쪼개두면 하기 싫은 날에도 어떻게든 하게 되고, 그러다 습관이 된다.
이번 주는 그 체크를 다 채우지 못했다. 그래도 못 한 개수보다 해낸 개수를 세면 하루 점수가 나온다. 그렇게 보면 100점은 아니어도 80점은 되는 한 주였다.
체력 관리는 숙제로 남았다. 일보다는 건강이고, 회사보다는 나다. 도울 건 돕되 나부터 챙기면서 후회 없는 캐나다 생활을 하고 싶다.
— Grayson

